살리타이-살례탑(撒禮塔-Salistai)
무신2012. 5. 20. 23:19
몽고(蒙古) 초기의 장군. 일명 살리태(撒里台).
1231년(고려 고종 18) 8월에 몽고 태종은 부왕(징기스칸)의 뜻을 받들어 금나라를 치는
동시에 고려를 칠 목적으로 살례탑이 몽고군의 별군(別軍)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의주
(義州)를 공략, 남하 하였다. 고려군은 이를 귀주(龜州). 안주(安州)등지에서 맞아 싸워
일시 격퇴하였으나 살례탑의 몽고군은 평양을 뺏지 못한 채 남진을 계속하여 마침내 개경
(開京)을 포위하였다.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할 수 없이 왕제(王弟) 회안공(淮安公)을 살례탑
의 본부인 안주에 보내어 화의를 맺으니 다음 해 1월 살례탑을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.
몽고의 사료에는 이때 살례탑이 서경주현(西京州縣)에 다루가치(達魯花赤-Darughachi)
72명과 약간의 수비군을 머므르게 하고 철병을 하였다고 하나 <고려사>에는 그런 기록이
없다. 1232년(고종19년) 고려에서 강화로 천도하고 몽고에 항쟁할 태세를 보이매 살례탑이
스스로 원수(元帥)가 되어 재차 침입하였으나 처인성을 공격하다가 승장 김윤후에게 사살
되었다. 그뒤 몽고군은 사기를 잃고 북으로 돌아갔다.